조각글 둘
달이 없는 밤이었다. 달의 그분이 달빛을 보내 아이들을 지킬 수 없는 날이라서인지 샌드맨은 바빴다. 아이들에게 악몽을 보내는 피치를 쓰러뜨리고 그의 보금자리로 향하던 굴의 입구마저 닫힌 것을 확인했지만 샌디는 마음 한구석에 의심을 담아두고 있었다. 한번 돌아온 전적이 있는 악몽의 왕이었으니만큼 신경이 쓰인 것이다.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달이 없는 밤임에도 세상은 반짝였고 악몽 없는 어둠의 아늑함 속에 거대한 금빛 모래섬은 꿈을 싣고 밤하늘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느리다고 하면 느리다고 할 수 있고 빠르다면 빠른 그 움직임 속에서 그를 발견한 것은 어쩌면 운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닮았으면서도 정 반대의 성질인 피치에게 어떠한 이끌림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얗게 얼어붙은 커다란 호수는 달이 없는 밤임에도 시리도록 빛났다. 그 가운데에 미동도 않고 앉아있는 검은 그림자가 샌디의 시선을 잡았다. 샌디가 찾던 악몽의 왕이 있었다.
마치 지상 위의 달처럼 빛나는 호수 위, 무릎을 턱까지 당겨 두 팔로 감싸 안고 마치... 마치... 그래, 아이처럼.
수백 년 싸워온 적이건만 피치는 공포의 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때때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자기 키의 배는 되는 피치이건만 샌디는 마치 상처 입은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하며 드넓은 호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그 큰 아이에게로 내려왔다.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음에도 얼음을 타고 무게가 전해졌는지 피치는 단번에 내려서는 샌디를 돌아보았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공포에 질린 눈빛에 샌디는 그만 감히 땅 위에 다시 얼굴을 나타낸 괘씸한 악몽을 때려눕히려는 생각도 잊고 주춤했다. 공포의 대상은 그가 아니었는지, 어둠 속 작은 태양처럼 빛나는 모습을 인식하자 피치는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샌디에게 좀 더 친숙한 평소의 퉁명스런 얼굴을 되찾고 다시 돌아앉았다. 그런 피치를 향해 금빛 채찍을 거머쥐었으나 놀라는 기척도 피하려는 기색도, 심지어는 샌디가 무슨 일을 하는지 돌아보려는 낌새도 나타나지 않는 악몽의 무반응에 샌디는 의아해하며 들었던 손을 내렸다.
---------------
샌더슨 맨스누지, 혹은 샌드맨에게는 목소리가 있었다.